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남양파출소 경관 피살사건 (문단 편집) == 상세 == 범행 당시 25세였던 최창국은 [[사천시]] [[정동면]] 고읍리 사람으로 [[군대]]를 갓 [[전역]]한 상태였지만 군에 입대하기 전 이미 [[아내]]와의 사이에서 젖먹이 아들을 두고 있었다. 전역 직후 집으로 돌아가자 아내는 아들을 주인집에 내버려두고 집을 나간 상황이었고, 생활비는 없는 데다 월세까지 밀려 설상가상의 처지에 봉착한 최창국은 [[은행]]을 털기로 마음먹고 1988년 3월 24일 오후 9시 40분 경 송포동 남양파출소에서 홀로 당직근무를 서던 장용업 경장을 칼로 찔러 살해한 뒤 45구경 [[권총]]을 탈취해 그대로 달아났다. 파출소에서 경찰관이 살해당하고 총기까지 탈취당했다는 소식에 경찰조직은 초비상이 걸렸고 범인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썼으나 한밤중 시골 파출소에서 벌어진 일이라 목격자도 없고[* 당시에는 지금처럼 [[CCTV]]가 다수 보급되었던 게 아니라 목격자가 없으면 범인을 잡기가 참으로 곤란했다.] 피해자인 장 경장이 누군가에게 원한을 살만한 행동도 하지 않아 용의자를 찾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. 결국 이 사건은 [[미제 사건]]으로 분류되었다. [[https://imnews.imbc.com/replay/1988/nwdesk/article/1807863_29513.html|관련 기사]] 하지만 1997년 9월 11일 사건 발생 약 9년 6개월 만에 범인 최창국이 자수를 하면서 사건의 전말이 드러났다.[[https://news.kbs.co.kr/news/mobile/view/view.do?ncd=3777637|#]] 최창국은 사건이 뉴스에 보도된 직후부터 큰 죄책감을 느껴 은행을 털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고 하며, 탈취한 총은 인근 야산에 파묻었다고 한다. 9년간 공사장 인부와 경비원 등을 전전했으나 매일매일을 죄책감에 괴로워 하느라 제대로 된 일을 하지도 못했다고 밝혔다. 최창국은 자수한 점이 참작되어 [[유기징역]]형을 선고받았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